■ 마침내 여기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입니다.

스포츠 저지를 입은 많은 어린이들과 함께 국립경기장 역에 내렸습니다. 보호자의 인솔하에 온 학생들이 대부분으로 아마도 JFA측에서 적잖은 인원을 일반석에 초정한 모양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작년 포항 VS 이티하드 전 때보다 더 많은 관중이 들어찬 이날의 경기였죠..

사람들 무리를 쭐래쭐래 따라가다보니 국립경기장 입구가 등장,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섰죠. 우리 자리는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W석 왼쪽 섹터의 모서리 자리. 다행히(?) 주변에 빈자리가 많아 전반이 끝난 후엔 더 앞자리로 이동해 관전할 수 있었습니다.

 
 
소지품 검사. 가방 다 열어보긴 하는데 금방 패스패스하더라.   성남 클래퍼를 나눠주고 있는 팬들.
 
긴장...   경기 시작 1시간 전. 넓은 트랙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시야가 괜찮았다.
 
 

■ 라인업

성남 선발 : 정성룡, 고재성, 사샤, 조병국, 김태윤, 김성환, 김철호, 조재철, 송호영, 조동건, 몰리나

---몰리나-----조동건-----송호영---
--조재철------김철호------김성환--
김태윤----조병국-----사샤----고재성
-------------정성룡---------------

서브 - 강성관, 윤영선, 정호정, 용현진, 문대성, 김진용, 남궁도

- 라인업 소개가 끝나자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이건 지난 주 리그 경기 때와 또 다르지 않은가.. 원래는 중앙수비 대체 자원으로 쓰다가 지난 주엔 우측 풀백을 보던 김태윤 선수가 왼쪽 풀백으로 나왔고, 중앙 미들은 김철호 - 조재철 - 김성환이 모두 나왔습니다. 아, 김철호 선수가 돌아왔구나! 그건 다행이긴 한데 저 셋 중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된다면 마땅한 교체 자원이 없는 것이 아닌가.. 지난주까지 부상이었던 김철호 선수가 몰리나가 맡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잘 해줄 수 있을까.. .....


조바한 선발 : 고단, 호세이니, 아흐메디, 탈레비, 마히니, 케이리, 하다디파, 라자브자데, 카스트로, 가지, 칼라트바리

 
일찍부터 몸을 푼 정성룡.   우리 선수들의 훈련. 몰리나, 김진용, 조재철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 전반전

전반 초반은 조바한의 페이스였습니다. 조바한의 원톱 이고르 카스트로는 상당히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죠. 사샤를 앞에 두고도 여러 차례 헤딩을 따내는 장면이 놀랍더군요. 9번 칼라트바리의 공격 전개도 괜찮았고, 뭣보다 성남 미들진의 패스미스가 많았어요. 결승전이라는 부담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경직된 분위기였달까. 제 기억으론 전반 30분이 다 되도록 몰리나의 왼쪽 돌파 3번 정도 외엔 성남의 이렇다할 공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왼쪽 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중앙과 우측도 함께 살아나게 됐죠. 미리 말하건데 이날 몰리나는 그야말로 클래스가 다른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조바한의 밀집수비 2-3명을 벗겨내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보여줬죠. 이 환상적인 선수가 앞으로도 계속 성남에 남아줄까..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흠.

전반 28분, 분위기를 타고 성남이 선제골을 터트립니다. 김성환의 롱드로잉에 이은 사샤의 혼전포가 작렬! ▶


아니, 이것은! 지난 시즌 2번 정도 본 기억이 있어!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 다시 보게 되다니. 이건 뭐랄까.. 굉장히.. 재밌네;;

전반 남은 시간 동안 성남은 몰리나의 예리한 킥을 필두로 공격을 이어나갑니다. 조직이 다소 안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패스미스들이 나와 조바한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죠. 후반 44분에 PA안에서 호세이니가 날린 터닝슛은 거의 골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성룡의 슈퍼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 방송버전 하이라이트는 여기)

 
 
초반엔 꽤 불안했지. 조바한에게 세트피스도 엄청 내줬다.   그러나 세트피스로 골 넣은 것은 성남
 
 
 

■ 하프타임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출입구 근처에서 이날 경기의 매치 프로그램 팔고 있더군요. 10페이지 정도 되어보이는 컬러 유광의 책자였는데 가격이 무려 1000엔이었습니다. 내용은 뭐 별거 없더만요. 우선 페이지의 절반이 광고이고, 역대 전적이나 팀 전력 분석기사 좀 있고 끝. 그리고 모든 내용이 영어와 일어로만 쓰여있었습니다. 한국인이나 이란인이 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나보군;; 그래도 기념이다 싶어 하나 샀는데 경기 끝나고 나올 때 잃어 버렸어요-_-. 그 땐 너무 흥분을 해있어서.. 쩝.

 
매치 프로그램 사세요.   하프타임엔 모 회사의 치어리더들의 공연이 있었다. 무지 잘하더라.

■ 후반전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후반전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양팀 모두 교체선수는 없었으며 흐름도 백중세였죠. 그러나 후반 초반에 벼락 같은 2번째 골이 터집니다.

몰리나가 올려준 코너킥이 조동건의 머리에 굴절되자 기다리고 있던 조병국이 곧장 헤딩슛으로 꽂아넣은 거죠. 말그대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후반 7분). 3년 전 알 카라마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도 이렇게 골을 넣었었지... 라돈치치의 결장으로 생긴 결정력의 공백을 두 센터백 선수들이 훌륭하게 메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2골차로 벌어지자 조바한은 공격수를 연거푸 투입하며 공세로 나섭니다. 반면 성남은 결코 물러나는 운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3톱 라인을 크게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으로서 공격을 막아냈죠.

그러나 이후 성남은 여러차례 위기를 맞습니다. 볼을 뺏기면서 우측 라인이 무너지기도 여러번, 사샤의 헛발질로 상대 공격수에게 결정적인 슈팅 찬스를 내주기도 했죠. 전반 종료 직전 나온 슈퍼 세이브처럼 '정성룡이 한 골 벌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이 최소 2번은 더 있었습니다.

 
 
막상막하의 경기.   폴대가 시야를 가리네.
 
    이 날 경기 주심은 월드컵 심판 니시무라 씨. 카드를 참 안 꺼냈다;;
 
몰리나의 킥이 아니었다면 우리 팀 공격은 어찌됐을까?   조바한에는 몰리나 만한 키커가 없었다.
 
 

전방에 남아있는 공격수들이 카운터 골을 1개 더 넣어줬으면 한결 쉬운 흐름이 됐겠지만 조동건 선수가 아까운 찬스 2번을 놓쳤죠. 기실 이란 골키퍼가 잘하기도 잘했습니다. PA라인 밖에서의 1:1 상황에서 태클로써 공을 빼내는 모습은 참 감탄스러웠어요.

이란 키퍼의 선방이 이어지는 사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조바한은 후반 21분, 기어이 추격골을 만들어냅니다. 골은 칼라트바리 레자가 넣었지만 그 이전에 중앙수비들이 카스트로를 놓쳤던 것이 결정적인 실점 원인이었어요.

 
정성룡이 막아냈는데 하필 그게 또 상대 공격수 쪽으로 튀어서..   공격수를 계속 투입하는 조바한.
 

2:1이 되면서 똥쭐 타는 스멜이 여기저기서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추가 실점의 위기도 두어차례 있었죠. 그러나 골을 허용한 이후 15분여를 잘 버텨내면서 차츰 흐름을 안정시켰습니다. 상대가 집요하게 우리 우측면을 파고들자 왼쪽 풀백 김태윤 선수가 많은 활동량으로 오버래핑하면서 효과적인 역습을 만들어냈죠. 후반 34분엔 송호영 선수 대신 김진용 선수가 투입되어 전방에서의 활기를 더했습니다.

그리고 후반 37분, 김진용이 커트하고 몰리나가 드리블 슛을 날린 볼이 상대 수비를 맞고 흘러나오자, 공격 가담했던 김철호 선수가 오른발 토킥으로 정확하게 3번째 골을 꽂아넣습니다. 이 쐐기골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김철호의 골.. 최고의 환희를 맛본 순간이었다.    
 


10분 후 주심의 종료휘슬이 울리고..
성남이 마침내, 2010 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릅니다!

 
 

■ 경기가 끝난 후..

 
 
 
 
시상식 사진을 찍으려고 1등석(본부석) 쪽으로 몰래 넘어왔다.   호영이와 태극기. 나중에 기사보니 라돈이 가지고 온 거라고 하더라. 찌잉.
 
ㅠ_ㅠ   너무나 기뻐하는 라돈..
 
 
 
 
 
시상식이 시작됐다.    
 
주장 사샤가 상 받는 동안 자기들끼리 사진찍는 선수들;; 알싸에서 나온 표현을 빌자면 = '상셔틀'.
 
득의양양 귀환.   사진 또 찍지 뭐. 몇 번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바쁜 샤 주장. 경기 MVP와 올시즌 챔피언스리그 MVP도 사샤에게 돌아갔다. 이대로 AFC 올해의 선수상도 받았음 좋겠네. 박지성이 안 받는다는데 뭐.
 
아직도 찍고 있잖아?   득점왕은 수원의 허세, 아니 호세모따. 김주성 국제부장이 대신 받았다.
 
 
 
 
    드디어 시상식의 클라이막스가..
 
 
 

이 감동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K리그 챔스 출전팀 최약체라는 비판에도.. 지자체와 모기업의 무관심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은 기적 같은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이는 2년 연속 ACL 트로피를 거머쥔 K리그의 승리이자 성남 역사의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2004년 모란 참사의 한을 푸는 승리이기도 합니다.


차경복 감독님, 보고 계신가요?


우리 성남이 우승했어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이겼다구요..

이제는 하늘에서도 두 다리 쭉 펴고 편히 쉬세요.
감독님의 제자들이 이렇게나 훌륭히 성장했답니다.

 
 
 
 
 
 
 

■ 마무리

귀국 후에도 경기 영상과 사진들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릅니다. 몰리나와 라돈, 감독님까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고선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졌죠. 그리고 장학영 선수도 우승 세리머니 때 왔었더군요! 섭터석에서 장학영 콜이 들리길래 혹시나 했었는데, 우리 장주장도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자, 오랜 숙원이었던 아챔 우승에 성공했으니 이제 남은 건 K리그 플레이오프와 FIFA 클럽월드컵이로군요. 시즌 마지막까지 모두가 열심히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우승을 통해 앞으로의 구단 운영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올시즌 정말 위기가 많았던 우리 팀 아닙니까. 내년엔 좀 더 좋은 일들이 많을 듯한 예감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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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