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일본으로 - 11월 10일

중딩 시절 멋모르고 러시아에 끌려 갔다온 이후 대략 15년만에 떠나는 해외 여행이다. 더구나 행선지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했던 일본 열도라니, 데프콘 99에 준하는 만반의 준비태세를 아니 갖출 수 없다. 짐과 일정표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 있게 장도의 첫발을 내딛었다. - 뭐 실제론 여행의 기본조차 안 되어있는 상태였다는 사실을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절실히 느끼게 되지만.

 
5호선을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 비행기 출발 시각은 오후 2시였으나 거의 오전 10시쯤 공항에 다다랐다. G20을 앞두고 몸수색을 강화했으니 공항 이용객은 비행기 이륙 3시간 전에 미리 가있으라는 TV뉴스를 봤었거든. 그런데 3시간 전에 왔더니 항공사 창구도 아직 안 열었네?(뭥미) 뭐 기다리는 시간 동안 핸드폰 로밍 센터에서 이런저런 설명도 듣고 공항 구경도 하고 그랬다. - 하도 여행하고 담을 쌓고 살다보니 해외보다 우선 공항이 다 신기하더라.
 
제주항공 접수 중. 일본인 이용객들이 굉장히 많았다.   출국 심사를 빠르게 끝내고 면세구역에서 TV를 보며 기다렸음.
 
드디어 출발! 이 얼마 만에 타보는 비행기냐. 휴가 나올 때 수송기 2번 탄 걸 빼면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처음 타보는 건가? 아니, 언젠가 국내선 한 번 탔던가? 어쨌든 신선한 경험이었다. 기내식으로 제공받은 삼각김밥도 들뜬 기분을 양념삼아 맛나게 먹었어(근데 좀 식었던데). 칸사이 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은 굉장히 극적이더라. 전 승객이 무사 착륙을 축하하며 브라보를 연발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였다.
 

아- 이곳이 진짜 일본이구나- 여기가 하루히와 이토 켄지와 츠보미의 나라입니까- 라는 감상에 젖어 있을 틈도 없이 핸드폰을 꼬나 잡았다. 형과 오사카 시내에서 만나기로만 했지 구체적인 조우 장소는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 나의 폰이 자동로밍 됐을 것이라 굳게 믿고 연락을 시도했는데- 이게 통화 연결이 안 되는 거다. 저장된 형 핸드폰 번호를 그냥 입력해도 안 되고, 국가 번호를 빼고 입력해도 안 되고, 도코모 통신회사 안내양의 말씀대로 지역번호에서 0번을 빼고 입력해도 안 됐다. 심지어는 공중전화로 해도 안 됐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일단 난바역에서 만나자고 급하게 말을 했다. 이어서 전번이 이상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전화가 똑 끊어져 버렸고, 받은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하니 또 연결이 안 된다.

....아나 이거 진짜....

당장 돌아가는 비행기 잡아타고 김포공항 로밍센터 가서 항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으아니차 이아가씨야 이거그냥된다고했잖아요 근데왜안되냐규우와아아앙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국제번호+국가번호+지역번호+핸드폰 번호가 더 해져있는 형의 번호 중 어디까지가 핸드폰 번호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형을 만난 후 그대로 기본 번호를 눌러봤더니 바로 통화가 되었거든(;;).

 
어찌됐든 공항에서 계속 비비고 있기도 뭐해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우선 난바역으로 가기로 했다. 도중에 형이 전화를 걸어와 터미널까지 나오기로 함으로써 전화 연락 문제는 일단 종결. 리무진 버스는 JR난바역과 연결된 OCAT(오사카시티 에어터미널)까지 직행으로 가는 걸 탔는데, 내가 가지고 온 가이드북의 내용과는 요금과 시간, 코스 등이 모두 달랐다. 06년판 가이드북 덕분에 더 헷깔렸네 그려-_-;;

버스에 오르기 전 짐 나르는 어르신께 '이 난바가 JR난바를 말하는 게 맞나요?'라고 더듬더듬 물어보며 현지 일본어의 첫 마디를 뗬다. 여기서 굳이 '어르신'이란 표현을 쓴 것은 그 분의 연세가 최소 70세 이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 여행 내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사회활동 모습을 굉장히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모두가 지극히 친절했다. 버스에 올라 차창 밖의 그 분께 꾸벅 목례를 드렸더니 더 깊은 인사로 답례를 하신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아주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난바역에 도착해 형과 조우 성공. 교토로 가기 전에 도톤보리 + 신사이바시 구경을 하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바로 나으 짐이다.

첫날 신사이바시 구경은 원래부터 예정에 들어있었다. 입국할 때 들고온 짐은 역안 코인로커 맡겨두면 간단하리라 생각했었지. 그런데 막상 코인로커 앞에 서니 APEC 정상회담 관계로 10일에서 14일까지 역안의 모든 코인로커를 폐쇄한다는 딱지가 붙어있는 게 아닌가. 혹시나 싶어 역 주변의 다른 로커들을 찾아봤지만 모두 마찬가지 형편이었다. G20에 이어 APEC까지 이 모양? 결국 교토 숙소에 당도하기 전까지 그 무거운 짐가방을 계속 들고 다녀야했다. 나의 여행피로는 이런 식으로 시작이 된 것이야.
 
 
상당한 번화가였고 사람도 많았다.   저녁으로 라면을 먹었다. 미리 자판기에서 계산하고 들어가는 게 신기!
 
신사이바시로 이어지는 상점가. 일본은 지역마다 이런 상점가들이 다 있는 거 같더라. 게임장이나 서점들을 둘러봄. 계속 걷다보니 메인 스트릿이 아닌 약간 후미진 거리들도 나왔는데, 거의가 다 비싸 보이는 유흥가였다. 어느 골목에서는 한글 광고판이 붙은 떡볶이/분식점이 있어서 깜놀.
 
 
도톤보리의 야경   다리 밑에다가 형광등을 붙여놨다.
 
 

슬슬 난바역으로 돌아갈까- 하고 건널목에서 길을 기다리는데 어떤 외국인 부부가 우리에게 길을 묻는다. 그쪽에서 영어를 쓰기에 형도 처음엔 일본어로 대답을 하다 곧 영어로 바꾸었다. 하지만 우리도 초행길인지라 뭘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몰랐다. 형이 GPS로 살펴보겠다며 스마트폰을 꺼내드는 찰나에 다른 일본인 한 명이 난입했다. 동글동글한 얼굴을 하고 담배 연기를 뻑뻑 내뿜고 있던,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길을 찾고 계신가요'라며 영어로 말을 걸어오더니 이리저리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가 나올 틈도 없이 담배를 빨면서 휘 가버렸다.

...우리는 잠시 벙 쪄있었다. 설마 일본에 저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겠지?

 
잠시 들른 게임센터. 하츠네 미쿠는 그냥 PSP판으로 참아주시지.   드럼XG는 더블 베이스라서 해볼 엄두가 안 나더라.
 
자전거 주차장. 무려 유료(!)였음에도 수천대의 자전거들로 꽉 차있었다.   전철을 1번 갈아타면서 교토에 도착. 1시간 좀 넘게 걸린 듯 하다.
 
채 10시가 안 된 시각인데 거리가 온통 깜깜했다. 전철 타고 오는 도중에도 거의 불 꺼진 유령도시 필이었는데..(;) 원래 일본은 가게 문을 일찍 닫는단다. 특히나 교토는 해만 지면 볼 것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하니, 대도시의 화려한 밤에 익숙한 나로서는 아주 생소한 느낌이었다.
 
동네는 무척 조용했고 차도에도 다니는 차들이 없었다. 그나마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집집마다 현관문 앞에 자전거 2-3대씩이 서있었고 담벼락도 없이 그냥 밖에 나와있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형 말로는 잠금잠치도 안 걸어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교토라는 이 조용한 도시는 도착하자마자 놀라움의 연속이구나;;.
 
마침내 형의 집에 도착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대략의 신변 정리를 끝내고 아픈 발바닥을 주무르는데 형이 대뜸 서점에 가자고 한다. 이제 한밤중이 다 됐는데 무슨 서점이냐고 했더니 동네에 새벽까지 하는 서점이 있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며 어두운 거리를 나섰다. 그런데 한동안 걷다보니 정말로 영업중인 서점이 나타나더군!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이 야심한 밤에 편의점과 서점만이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한다는데 과연 매장 안은 만화와 소설을 읽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 60% 이상은 만화였다.
 
돌아가는 길에 또 다른 동네 서점에 들렀다. 이곳은 새벽 3시까지 영업. 점포에 따라선 새벽 네다섯시까지 영업하는 서점도 있다고 한다. 나는 엄청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나.... 싶었다..

서울 우리 집의 반경 1KM 이내에는 서점이 없다. 대학교를 포함해 학교가 3개나 있지만 그나마 있던 서점들도 다 망했고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술집이나 밥집이 들어섰다. 시험 관련이 아니면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고학력자들이 넘쳐나고 학교 근처건 집 근처건 밤샘 술집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나라와, 지하철마다 버스마다 책 읽는 사람들이 즐비하며 모든 상점이 다 닫은 새벽에도 서점들이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하고 있는 나라, 과연 어느 쪽이 문화 강국으로서의 자격이 있다할 수 있을까? 깊은 밤 찾아간 두 곳의 동네 서점이야말로 이번 여행을 통해 마주한 최고의 충격이었다...
 

■ 11월 11일

여행 이틀째. 약간 늦게 일어났다.

 
형의 원룸. 세면실과 화장실도 따로 있고 이만하면 상당한 양품이란다.   어젯밤 형이 구입한 학생회임원들 1권. 4컷 만화임에도 B6판형이다.
 
 
조용한 교토의 아침. 자전거로 통근 중인 사람들이 많았다. 드문드문 신사와 절, 작은 사당들이 보인다.
 
우선은 교토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형이 다니는 학교를 봐두고 싶기도 했고 또 연구실의 노트북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티켓과 동경으로 갈 야간 버스표 예매도 해야하니까.
 
규동집 체인점에서 아침을 가볍게 해결. 규동 맛나더라!   100엔샵. 칫솔과 몇 가지 약을 샀다.
 
학교 앞 서점과 파친코. 파친코와 서점은 일본 어딜가나 있는 것 같다.   교토대 도착. 입구부터 자전거 판이었다.
 
교토대의 첫인상은 굉장히 고풍스럽다는 것. 나이테를 수백줄씩 품고 있을 듯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블럭마다 한가득이었다. 다른 학과 쪽으로 가면 새로 지은 건물도 다수 있다곤 하지만 어쨌든 공대 쪽엔 낡은 건물들이 많았다. 입구도 좁고 복도도 좁고 엘리베이터도 좁고 막말로 표현하자면 80년대 재수학원필?;; 그냥 뭐 그런 느낌. 그러나 이 허름한 건물을 세계적인 석학들과 수백억짜리 첨단 기자재들로 가득 채우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교토대 공대인 것이다.
 
연구실에서 노트북을 들고 나와 묘한 아지트로 향했다. 새 건물로 이전한 다른 학부의 옛 건물인데, 일부를 공학부의 실험실로 쓰고 있단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연결하여 옥상에서 인터넷질. 축구표는 세븐 일레븐에서 결제가 가능하다길래 시내에 나가 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야간버스는 적당한 물건 찾기가 어려웠다. 유명회사들 버스는 너무 비쌌고, 일부 저렴한 티켓들은 진작에 동이 나있는 상태. 수소문한 결과 형의 집 근처에 있는 여행사에서도 버스표 예매가 가능하다 하여 저녁 때 그 쪽을 가보기로 했다.
 
지하매장에 들러 아버지께 드릴 교토대 기념품을 사다. 교토대 카레는 어떠한 연유로 나온 건지 모르겠는데 특제 '총장 카레'가 진짜 대박이다!   밖으로 나오니 학교부지 바로 옆에 요시다 신사라는 제법 큰 신사가 있어 들어가보기로 했다.
 
 
신사마다 있는 손 씻는 곳. 마셔도 된다는데 국자가 영 불편해서...   우측의 건물은 요시다 유치원이다. 신사와 같은 재단에서 관리하나?
 
형 친구들 말로는 이 신사에서 소원 빌면 완전 안 이루어진단다.   이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겠지.
 
 
 
우리가 왔을 때 마침 뭔가 행사를 하고 있더라. 단가(어느 상인회 같던데)에서 공양을 부탁한 듯? 아무튼 대원궁까지만 보고 도로 내려왔다.
 
아담한 골목길을 지나는 중.   차들이 건물부지에 쏙쏙 들어가 있는 게 참 신기하다.
 
엇 또 다른 학교 부지로 들어왔네.   만화부, 애니부, 봉사부 등의 광고판들이 붙어있다.
 
이 낡은 건물도 동아리방 중 하나란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에 나오는 낡은 학생회 건물이 이런 느낌이겠구나. 더 낡은 밴드부의 건물도 있다고;
 
거리를 걷는데 교토대 부속 병원이 보인다.   이 병원 엄청나게 크더라. 내가 아는 이모 대학병원 크기의 5배는 됐다.
 
 
한참을 걷다보니 배가 고팠다. 다리도 쉴겸 강변의 조그만 카페에 들어갔다. 혼자 온 손님들이 몇 있었는데 외국인 2명 포함 모두 책을 보고 있었다. 교토엔 외국인 관광객도 많고 외국인 유학생도 많다더라.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바라보는데 3초에 1대씩 자전거가 지나갔다.
 
관광지 몇 개를 지나치고 길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길을 가르쳐 준 후 시내로 들어왔다. 또 내 오른발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도 잠시 쉬어야했다. 사실 전날 밤부터 양쪽 발 모두에 통증이 있었다. 이유인 즉슨 얼마 전 한국에서 새 캐주얼화 하나를 얻었는데 이게 손가락 두개 들어갈 틈도 없이 발에 꽉 끼는 것이다. 집에서 가끔 외출 할 때는 잘 몰랐었는데 이걸 하루 종일 신고 다니니까 발바닥이 접히고 발등이 쓸리는 등 부작용이 심하더라고. 그리하야 '여행갈 때는 편한 신발을 신어라'라는 대전제를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된 것이다. 아주 무시무시한 대가를. 앞으로도. 계속.

아무튼 시내를 돌고 돌아 목적지인 교토 국제만화박물관에 도착.
 
웹을 통해 본 바대로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의 박물관이었다. 입장료는 500엔. 과거 학교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만화 박물관으로, 옛 교실과 교장실 등 일부 시설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전시관으로 쓰이는 몇몇 구역을 제외하면 거대한 만화방과 같은 느낌이랄까? 근처에 사는 일반 학생들도 만화를 보러 자주 들르는 모양이다.
 
윗층의 홀에는 대형 전시장이 있는데, 70년대부터 모아놓은 점프나 매거진 등이 사방의 벽을 가득 메우며 장관을 이뤘다.. 그 외에도 유럽작가들의 만화전이나 만화의 역사 전시물, 해외판 만화 소개, 기념품 코너 등이 눈에 띄었지만 규모들은 모두 그닥 크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박물관 하나 있으니까 국제 만화관련 행사도 하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되고 괜찮아 보이더라. 우리가 출구로 나가는 동안에도 한무리의 외국 학생들(아마도 영국)이 견학을 왔더라구.
 
밖으로 나섰다.   세븐 일레븐 발견.
 
결승전 표를 예매하고 산죠 거리 탐방에 나섰다. 티켓은 3000엔짜리 2등석을 2장을 끊었는데 자리 선택하는 절차도 없이 그냥 자동으로 배정이 되더라.
 
거리 구경을 한참하다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만두를 먹었던가.   발이 너무 아파 강가로 내려와 신발을 벗고 잠시 쉬었다...
 
저 멀리 보이는 북오프.   일본엔 까마귀가 참 많더라. 딥따 크고 또 시끄럽다.
 
휴식을 끝내고 북오프를 들렀다. 물론 단순한 구경이었다. 여행기간 동안 만화, 게임점은 보이는 족족 다 들어가 보았지만 실제 쇼핑은 마지막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지 않았다. 쇼핑 목적으로 온 여행도 아니고 여유 자금도 별로 없었기에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놓았던 것.

아무튼 몇 군데의 상점들을 돌다보니 깨닫게 됐다. 만화든 게임이든, 신품이든 중고품이든 내가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던 가격와 실제 현지에서 붙여놓은 가격이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장마다 재고량이나 상품의 상태 따라 몇 백엔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되 기본적으론 모든 점포의 시세가 동일한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몇몇 대형 체인점들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다보니 일괄적인 가격 책정이 가능한 게 아닐까?

북오프를 돌아본 후엔 다시 시내로 들어가 라운드1이라는 게임센터에 들렀다.
 
이곳에서 <샤이닝포스 크로스>를 처음 해봤는데 수수하면서도 깔끔담백한 게 굉장히 재미있었다!! 철지난 게임이라 우리 외엔 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덕분에 편하게 싱글 플레이를 진행했다. 잼나게 놀고 센터를 나서니 저녁 6시쯤이었다.
 
버스비 440엔을 내고 집 근처(절대 집 앞이 아니다)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릴 때 요금 정산하는 시스템과 정차할 때마다 엔진이 꺼지는 버스가 적잖이 신기했다. 정류장에서 내린 후 다시 집을 향해 한참을 걸어야했다. - 어쩌면 '한참'이라고 할만한 거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발바닥에 축적된 통증 때문에 나로서는 그렇게 느껴졌다.

형은 이쪽이 지름길이라며 정체불명의 신사(그러나 엄청 큰) 사이사이를 척척 걸어 나갔다. 어두운 조명 덕분에 공포게임 분위기가 확났다.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인근 지하에 있는 대형마트에 들렀다. 내일 동경으로 가는 야간버스 표 예매를 위해.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모두 매진, 결국 버스 티켓을 구매하지 못했다. 형이 이따 연구실로 돌아가 다른 버스 회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저녁으로 990엔짜리 피자를 사왔는데 무척이나 컸다.   문득 열어본 내 핸드폰. 공항에선 도코모 찍혀있더니 이젠 또 보다폰이네?
 
방으로 돌아와 신발과 양말을 벗으니 양쪽 발 모두가 푹 삶아져있었다. 낮에 사온 연고와 밴드로 응급처치를 했지만 자고 일어나서도 괜찮을지가 걱정이었다. 그래도 오늘 아침엔 괜찮았었는데 피로가 이틀 누적되어도 똑같이 회복이 될까? 아무튼 피곤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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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