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버피치 / 닉 혼비

유럽 축구팬들이라면 이름 한 번 정도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아스날 관련 서적이다(동명의 아스날 관련 영화도 있음). 저자 닉 혼비가 아스날 팬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사실적이고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비꼬는 듯한 말투와 기발한 비유가 너무도 마음에 든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직전까지의 기록이라 앙리나 벵거 교수 등의 익숙한 이름은 전혀 나오지 않지만, 과거 잉글랜드 축구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볼 수 있는 좋은 작품(그림자가 좀 많긴 하군). 축구에 미친다는 게 어떠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 - 홈경기에서 아스날이 패하자 나이 지긋하신 어웨이팬 한 분이 어린 닉을 위로한다. 그런데 갑자기 흥분한 홈팬들 몇 명이 다가와 다짜고짜 그 노인에게 주먹질을 하고, 주변에선 당연한 일이라는 듯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얻어맞은 사람과 그의 가족들조차도;; ...100년 전통의 잉글랜드 축구는 원래 이런 분위기였던 거야...;;



2. 스켈레톤 크루 / 스티븐 킹

<노라> 같이 내 취향에 안 맞는, 약간 흐지부지한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다. 학생 때 친구한테 들은 모 괴담 얘기가 그대로 나와서 깜짝. 가장 섬뜩했던 에피소드는 역시 삼촌의 트럭 이야기다. 비주얼로 만들면 무지 잘 어울릴 듯하다.



3. 말타의 매 / 대쉴 해미트

저 유명한 탐정 - 샘 스페이드가 활약하는, 하드보일드의 대표적 작품이다. 하드보일드 계열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싸가지 없는 탐정의 존재는 역시 언제 봐도 흥미롭다. 뻔뻔하게 범죄자랑 돈 거래를 하질 않나, 사건 중에도 이 여자 저 여자 옮겨 다니질 않나(동료 부인 포함)... 어딜 봐도 하드보일드 그 자체!! 뭣보다 악당들이 너무 착해....-_-

주인공의 카리스마에 흠뻑 빠진 것에 비해선 구성 자체를 그닥 즐기지 못 했다. 치밀한 트릭이나 대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겐 비추.



4. 해롤드 핀터 전집1 / 해롤드 핀터

유명한 극작가 분(노벨 문학상도 받으셨다는)의 희곡 전집. 스토리 대본 쓰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빌려봤다. 근데 결과적으론 별로 도움이 안 된 것 같다... 맨 처음에 실린 <생일파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읽는 중엔 '이거 다들 정신병자들 아냐???' 하며 어처구니 없어 했었는데 이걸 실제 연극에서 본다면, 정말 무서울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5. 검은 집 / 기시 유스케

역시 명작이구나! 추리소설이라기 보단 공포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 전개도 훌륭하고 주제표출도 확실하다. 완전 팬이 되어버릴 것 같아. - 근데 이 분 소설이 의외로 많이 국내에 안 들어왔네. 앞으로 좀 더 찾아봐야겠다.

* 심장 약하신 분들이 조심해야 할 잔혹한 묘사가 꽤 많다. 영화판에선 이걸 어떻게 구성했는지 조금 궁금.



6. 이야기꾼 여자들 / 기타무라 가오루

17개의 단편들이 엮어져 있는 작은 책. 이야기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다. 그리고 대부분이 감정의 굴곡이 그닥 심하지 않은, 말그대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다.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 주절거리는 <기묘한 이야기>의 가십.ver 이란 느낌. 개중엔 듣고 나서 '그래? 그래서?'란 시큰둥한 반응이 나올 법한 밋밋한 얘기들도 없지 않다-_-.,.



7. 애니멀 크래커즈 / 한나 틴티

동물과 관련된 공포 단편집이란다. 꽤 독특한 문체를 가진 하드한 공포 소설. 주변에 있는 자잘한 정보들을 짧은 문장으로 툭툭 던진다.

하지만 그닥 재미있게 읽었다곤 할 수 없다. 뭣보다 문체와 어울리지 않는 형이상학적 흐지부지 결말이 좀... 읽고 있는 나는 내버려두고 작가랑 캐릭터랑 '응, 그랬지 그랬어' 하고 끝나버리는 에피소드가 굉장히 많다. 뭐 이리 공감이 안 가 이거...



8. 그린북

계속 되는 단편집 러시. 흥미로운 얘기가 많다. 현대적인 느낌으로 써내려간 산뜻한 이야기집으로 여러 번 읽을만 했다.



9. 크리스마스의 악몽

동화적 느낌을 지닌 판타지 모음집. 바로 앞에 소개한 <그린북>과 비슷한 성격의 단편집이나, 수록된 작품 모두가 오래 된 고전들이란 것이 특징이다.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스티븐슨, 기 드 모파상, 알퐁스 도데, 찰스 디킨스 등등.. 가히 올스타급이라 할만하다. 박장대소한 <음식을 탐하다>를 비롯, 나름 재밌게 읽었다. 이 이야기들이 한 권으로 묶였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에 대해선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유명 작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고전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



10. 한 푼도 용서 없다 / 제프리 아서

주식시장에서 100만 달러를 사기당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시 돈을 되찾을 계획을 세운다...는 이야기. 책을 다 읽고난 후의 감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 '마치 헐리웃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전체적인 발상의 시작부터 오버하는 권선징악 마무리에까지, 그러한 필이 꽉 들어차있다.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이것도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좀...



11. 지문 사냥꾼 / 이적

최근 애청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이적의 텐텐클럽'에서 이 책 얘기가 나오자, DJ 적군은 "아, 그 명작... 말이죠" 라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여튼 기대만큼 재밌었다! 문체의 세련됨이나 작가로서의 경력 등을 차치하더라도,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으니 나로선 OK. 강력 추천하는 에피소드는 <제불찰씨 이야기>. 마지막 변호사의 댄스씬까지 아주 배꼽 잡고 웃으면서 봤다. 개그물, 공포물, 잔혹물 등 여러 장르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 것도 특징.



12. 9마일은 너무 멀다 / 해리 캐멜먼

군입대 전에도 한 번 읽었던 책이지만 잘 기억이 안 나서 다시 빌려 읽었다. 니콜라스 웰트라는 괴짜 교수가 상황 진술 하나, 또는 증거물 하나만을 가지고 추론의 추론을 거듭해, 결국 사건 전모를 밝혀내고 만다는 독특한 형식의 추리물이다. 기발하고 치밀한 착상으로 작은 점을 부풀려나가는 스타일이 참 재미있다. 다만 나중에 쓰여졌다는 <사다리 위의 카메라맨>은 좀 뭐랄까, 원래 있던 단편들과의 이질감이 심하다. 권말에 완전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단편이 첨가된 것(그것도 2개나)도 그닥 마음에 안 들어-_-.

여담이지만 작가 본인이 쓴 서두 -자신이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우연찮게 신문기사에서 '9마일은 너무 멀다'는 문구를 읽은 케멜먼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 문장을 가지고 추론해 볼 것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했었다. 그러다 문득 이것을 이용한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 먹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아 단념하고 말았다. 2년쯤 지난 후 다시 해보았으나 역시나 잘 안 되었다. 그는 몇 년 후에 다시 또 써보고, 또 몇 년 후에 다시 써보았다. 그리하여 맨 처음 시작한지 14년이 되던 해, 마침내 이 단편 하나를 탄생시키고 추리소설가로서 등단을 하게 된다...

14년 만에 쓰여진 단편 하나.
작가가 이야기 하나를 만드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느냐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정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작가가 써놓았다).



13. 세계호러단편 100선

무려 980페이지에 이르는 광활한 분량 안에 100개의 단편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시기적으로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지어진 작품들이 많음. 갖가지 분량의 갖가지 이야기를 모아놓아 가히 호러단편 사전이라 할만하다. 작가진도 다양해서 스티븐슨, 버지니아 울프, 기 드 모파상, 코난 도일, 조지 웰즈, 마크 트웨인 등 쟁쟁한 거장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심지어 O.헨리의 <가구 딸린 방>도 수록되어 있으니!). 한꺼번에 많이 읽기는 무지 피곤하지만, 두고두고 보고 싶은 책. 언젠가 한 권 사서 집에 둘까 싶기도 하다. 2만 5천원이라는 책 값이 부담이 안 될 어느 때에-_-.



14. 금요일, 랍비는 늦잠을 잤다 / 해리 케멜먼

<9마일은 너무 멀다>의 해리 케멜먼이 쓴 장편 시리즈 1탄. 다소 아쉬운 점이 없잖은 작품이었다. 트릭이나 반전이 납득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다지 재미가 없었달까. 역자 해설에 따르면 <X요일, 랍비는 XX했다> 시리즈는 후기로 갈수록 추리적인 요소가 줄어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모든 작품들이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며 빅히트했다고 하니, 역시 사람들의 취향은 참으로 다양한 거...

그리고 또 하나. 예고없이 펼쳐진 권말 부록 때문에 마무리를 읽는 템포를 또 놓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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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