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도서관이 생긴 이후 한 달간 읽은 책들 감상'이 되겠다.

도서관 생성에 따른 문화 특수로 인해, 그 동안의 굶주림에 보복이라도 하듯 책들을 몰아서 봤다.
단순히 잊혀지는 것은 싫고 간단히라도 개인적인 감상회(?)를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진짜로 한다(...).
감상 항목은 엘러리 퀸이 제시한 10가지 추리소설 평가표-를 따르지 않고, 그냥 내멋대로 했다.

 

 

1-3.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흐른다 / 츠지무라 미즈키

상당한 기대를 하고 봤던 3부작 미스테리. 무대, 사건, 캐릭터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강력한 작품이어서, 정신없이 빠져들어 봤다. 그러나 2,3권에 걸친 중반전은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 없잖았다. 굳이 이런 이야기들을 부각시켜 미스테리물과 청춘 드라마의 경계로 다가설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도 극장판으로 제작된다면 가장 먼저 생략될 장면들일지도 모른다.

결말 부분에 있어선 별 5개에 3.75개를 주고 싶다. 진범 맞추기는 그다지 아렵지 않다. 그보다 그와 관련된 다른 반전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여튼 매력적인 부분이 많은 작품. 나도 언젠가 이런 흐름의 만화를 꼭 그려보고 싶군!

여담 - 네이뇬 검색해봤는데, 이 작가 나랑 동갑이래.



4. 꼬리 아홉 고양이 / 엘러리 퀸

간만에 읽은 엘러리 퀸의 독립적인 작품이다. 참고로 '꼬리 아홉 고양이' 대신 '아홉 꼬리 고양이'를 검색창에 치면 게임 <악튜러스>에서 엘류어드가 사용하는 채찍 무기의 이름이 나온다.(....)

후반이 약간 지루한 듯한 느낌. 용의자가 좁혀진 이후의 페이지 배분을 좀 줄였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사건이 동기도, 목격자도, 용의자도 없이 엄청난 미궁에 빠진 것으로 묘사된 것에 비해 대단원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연속 살인의 잔악함이나 어이없는 대형참사(...) 등에서 더 강렬한 임팩트가 느껴졌다.



5. 재앙의 거리 / 엘러리 퀸

라이트빌 시리즈 1탄. 2탄인 <폭스가의 살인>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주저없이 집어들었다. 새로운 사실들이 폭로되는 법정 씬들이 흥미진진한 작품(어째 수사과정보다 법정 씬들이 더 많았던 듯한 기분이 든다). 복잡한 트릭이나 장치 없이 사건 자체는 단순한 결론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얽혀있는 사람들의 고뇌가 가슴을 찌른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좋을 명작.

....하지만 역시 난 <폭스가의 살인>이 더 재밌었던 것 같은 걸;



6. 10일간의 불가사의 / 엘러리 퀸

라이트빌 시리즈 그 세번째. 등장인물 수가 적음에도 엘러리 퀸 특유의 마지막 반전을 철저히 고수한다. 처음엔 단순해 보였던 작은 사건이 연속해서 튀어나오는 추가 요소들에 의해 빠르게 팽창해 나가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클라이막스를 읽을 때의 긴장감은 상당했지만, 지나고보니 그냥 전개 부분에서의 잔재미가 더 컸던 게 아닌가 싶었다. 또 개인적으로는, 그닥 좋아하는 유형의 살인사건이 아니었다-_-. 난나난



7. 백모 살인사건 / 리처드 헐

에드워드와 백모의 두뇌싸움. <탐정을 찾아라>와 비슷한 형식의, 범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추리소설이다. 멍청하고 게으른 주인공이 되도 않는 살인을 가지고 끙끙되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론 살해계획 부분을 좀 간소화하여 더욱 더 본격 개그로 승화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지, 당시의 개그 센스로서는 이게 진짜 박 터지는 거였을지도; 현대판으로 리메이크 함 해보면 어떨까?



8. 독초콜릿 사건 / 앤소니 버클리 콕스

매 챕터마다 탐정이 바뀌어가며 진행되는 특이한 소설. 수사과정을 대부분 생략한 채 탐정들의 발표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최종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흐음.

그리고, 책 뒤 쪽엔 전혀 연관이 없어보이는 다른 작가의 단편이 실려있었다. 왜 이랬지? 임의로 넣은 건가? 아니면 원서가 원래부터 이렇게 되어 있었나? 누가 내게 말해줘 다시 내게 말해줘어 텔미 텔미 테테테테테텔미



9. 세 자매 탐정단 - 거리의 아이들 대학살 계획 / 아카가와 지로

광고 문구에 따르면 '김전일을 능가하는 일본 최고의 탐정소설'이란다. 믿을 수가 없다. 제목(특히 부재)을 잘못 짓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사실은 나도 제목에 낚였다. 시리즈로 있었지만 더는 빌리지 않았다...



10. 사고루 기담 / 아사다 지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무심코 집어든 책. 기대한 만큼의 재미는 아니었다. 준비된 무대에 비해선 이야기들의 쑈킹함이 덜했달까 - 나도 상업주의에 찌든 속물이 되어버렸나 보군-_-.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처음에 나온 도검 감정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생소한 분야여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11. 점성술 살인사건 / 시마다 소지

오랫동안 고대하고 있던 명작 고전. 그러나 도입부를 읽는 순간 이미 범인이 누군지 맞추었고, 이후로는 읽는 재미가 반감, 아니 1/10 감이 되어버렸다. 내가 그렇게 빨리 결말을 알아챈 이유는 작품 자체가 허술해서도 아니었고 내 추리력이 대단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이와 똑같은 상황, 똑같은 트릭을 이미 <소년탐정 김전일>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작을 읽는 재미를 10여년 전에 이미 빼앗아 버린 <김전일>이란 만화에 대해, 허탈감을 뛰어넘은 분노마저 느껴진다. 아무리 다른 매체에서 추리소설의 모티브를 따 가는 게 일반화되어 있다고 해도 이건 정말이지 너무한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진짜 무서워서 추리만화 못 본다.

애장판 김전일엔 해당 단행본 권두에 '이 사건은 소설 <점성술 살인사건>에서 따온 이야기입니다'라는 문구가 추가 삽입되었단다. <- 권말부록으로 들어있는 서평에 써있어서 알았다-_- 나 참. 처음 연재 때부터 삽입되어 있었다면 난 그 부분의 김전일을 보지 않았을 텐데..



12. 굽이치는 강가에서 / 온다 리쿠

온다 리쿠의 대표 히트작 중 하나. 역자 후기에 쓰여진 문구 한 줄이,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던 나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주었다.

"소설 중에는 줄거리보다는 줄거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더 매력적인 작품이 있다"

바로 그러하다. 예전에 읽은 <여섯번째 사요코>에서도, <네버랜드>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청춘 스토리라고 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많다. 책을 펼쳐드는 순간부터, 정신없이 읽는 이를 빠져들게 만드는 센스는 정말이지 탁월하다. 하지만 완결성에 있어선 다소 약하다(또는 로또-_-). 이것이 플롯 구성에 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는 온다 리쿠의 스타일?



13-18. 초원의 집 시리즈 / 로러 잉걸스 와일더
- 플럼 시냇가, 실버 호숫가, 소년 농부, 기나긴 겨울, 눈부시게 행복했던 시간, 처음 4년간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빌리러 가서 보고 와서 보고, 돌려놓으러 갔다가 또 보고. 무수히 반복해서 읽었다.

<초원의 집>시리즈는 총 9권으로 된 연작시리즈이지만 국내에 전권이 다 소개된 것은 아주 최근이었다. 어린 시절 ABE 소설 문집에서 그 중 3편 <큰 숲 작은 집>, <초원의 집>, <우리 읍내>을 발견한 나는 권당 기백회씩을 읽으며, 왠만한 씬이나 대사는 달달 욀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이 빠진 그 사이사이의 이야기, 또 그 뒷이야기들을 얼마나 궁금해 했었던가...
인디언 지역은 잘 빠져 나갔는지, 드 스메트엔 어떻게 정착했는지, 로러가 선생은 되었는지, 알만조와 결혼은 했는지.... 그 모든 이야기들이 이제야 다 해금되었다. 05년에 비룡소에서 나온 <초원의 집> 전집과 그를 구비해 둔 월계정보도서관이 나의 오랜 한을 풀어줬다(님 ㄳ). 묘한 감흥으로 읽는 내내 가슴이 떨려왔다. 모든 책들을 2-3번씩 정독했고 로러의 가족 이야기를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흑백 사진으로 만난 그들의 모습은 나의 뇌리에 깊히 박혔다.

담담한 문체로 그려낸 일상 생활의 그림일 뿐이지만, 그들의 생생하고도 절실한 삶은 읽는 이들을 웃고 울린다.
뭐 별 말이 필요 없다. 정말로 멋진 작품이다.

좀 다른 말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의 부끄러움도 가시질 않았다. 가진 것도 없이 생사의 기로에서 늘 힘들게 살면서도 언제나 열심히, 또 웃는 얼굴로 모든 것을 감사하는 개척자들의 태도는... 풍요에 찌든 게으른 현대인을 숙연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내 아이가 생긴다면 가장 읽어주고 싶은 책 1위.



19. 유리망치 / 기시 유스케

친구가 권해줘 보게 된 책인데 그 친구에게 감사하고 있는 중.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훌륭한 작품이었다. 화자가 바뀌는 부분으로 들어갈 땐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끝까지 다 읽고나니 넓어진 듯한 마음에 ok 사인이 나왔다. 최첨단 기기(?)와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트릭은 자칫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으려나? 그보다 여타 가설들과 그에 대해 고찰해가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 캐릭터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에노모토와 준코가 더 나오는 작품은 없으려나....

다음엔 동명 영화의 원작이라는 <검은 집>도 읽어봐야겠다.



20. 흑사관 살인사건 / 오구리 무시타로

그 유명한 <관시리즈> 중 하나. 고딩 때 <미로관 살인사건>을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서 빌려봤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은 다 읽지 못했다. 1/3정도까지 보다가 반납해버렸다. 내 추리소설 보다가 중간에 관둔 건 이 작품이 처음이다. 번역이 잘못된 건지, 원래부터 난해하게 쓰여진 건지, 내 눈이 이상해진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검색창에 <흑사관>을 쳐봤더니, 나 같은 사람 많네-_-_-_-_-;;

[08년 2월 28일 추가]
- <흑사관 살인사건>은 그 유명한 <관시리즈>(아야츠지 유키토作) 와 상관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완전 잘못 알고 있었네요;; 제보해준 juna군에게 감사를... 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_-



21. 월장석 / 윌리엄 윌키 콜린즈

대형 서점에서 동서 미스테리 북스를 훑어보러 가면 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었는데, 그 오랜 신경쓰임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보고 말았다. 나의 눈을 사로잡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다름 아닌 - 책이 엄청나게 두껍다는 것이다!-_-. 무려 69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미스테리! 사건 자체는 단순판 편이고 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상당한(아니, 대단한) 분량을 할애한다. 1868년 作으로 추리소설의 과도기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이해한다면, 나름 신선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리라. 베털레지, 로잔나, 제닝즈 등 매력적인 조연들의 차분한 이야기가 마음에 쏙 든다.

여담. 애블화이트가 클라크 양에게 "이 뻔뻔스러운 광신도!"라고 외친 순간, 10년 묶은 체증(아니, 이 책을 10년이나 봤을 리는)이 쑥 내려갔다.



22. 도서관의 바다 / 온다 리쿠

온다 리쿠 단편집. 그러나 수록 작품의 절반 이상은 기존 작품의 외전, 또는 예고편이다. 책 설명에 예고편 어쩌구 써있길래 '이게 뭔가'싶었는데 정말로 예고편이었다! 아무런 결론도 안 나고 끝나는 이야기들 때문에 적잟게 황당했다. 그래도 「어느 영화의 기억」과 「국경의 남쪽」은 추천. 책 자체가 별로 추천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_-. 어느 정도 온다 리쿠의 매니아가 된 사람들이 볼만한 책이다. 참고로 나는 매니아가 아니다. 게다가 최근의 독서를 계기로 다작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점차 하락하고 있다.



23. 아르헨티나 할머니 / 요시모토 바나나

제캡의 레지나형이 영화를 번역했다고 해서 원작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작품. 영화 예고편 보고 무슨 미스테리물이 아닐까-하고 기대하고 본 거였는데 완전 다른 분위기의 아름다운 소설이라 놀랐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대단히 서정적인 작품. 평화롭게 읽기에 좋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 가격을 마주하는 순간, 당신의 평화는 깨지고 만다. 89페이지에 80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 (그 안에서도 텅빈 페이지가 10페이지가 넘는다) 내가 상업주의인 건가? 아니면 이 책 쪽이 그런 건가?-_-





소설 이외의 여러가지 실용서, 새로 구입한 만화책, 라이트 노벨 등등을 전부 제외하고도, 지난 한 달 동안 스무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오랫동안 추리물에 굶주린 상황에서 새 도서관 땜에 흥분한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다. 2주일로 정해진 대출 기한이 무색하게 일주일에 2,3번씩 드나들며 책을 바꿔왔으니... 이 정도면 공급 과잉을 뛰어넘어 작업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고 봐도 무방하잖은가-_-.

앞으로 좀 자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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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