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얼 K리그 무비 <비상>

비상 http://blog.naver.com/bisangsoccer/

오랫만에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관 가서 영화 본 게 군복무 시절 휴가 나와서 봤던 <화씨9/11>이었으니까- 약 2년 3개월 만에 극장에 갔다온 셈이군요;; 영화관 가는 걸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닌데.. 애니 볼 시간과 축구티켓 살 자금등을 감안하면 역시 순위가 뒤로 밀리게 되는걸요. 이번에도 축구 영화가 아니면 안 갔죠, 암-_-

인천 유나이티드의 05년 시즌을 소재로 한 리얼 스포츠 무비 <비상>이 12월 14일에 개봉했습니다. 전국 개봉관이 고작 9개밖에 안 되는 초열악 다큐멘터리 영화였던지라, 내리기 전에 봐야할텐데- 봐야할텐데- 조바심만 내고 있었는데 우연찮은 찬스를 잡아 마침내 12월 22일, 관람을 갔습니다. 전날 인터넷을 뒤져보니까 개봉관이 전국 6개로 줄어있더군요?-_- 그나마 상암CGV등은 하루 1회 상영!! 헐... 시간 맞춰 보러갈 수 있는 영화관이 몇 개 안 되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더라고요(...). 대충 찾아본 결과- 광화문 씨네큐브로 결정!

처음 찾은 광화문 씨네큐브는 상당히 아담하고 조용한 극장이었습니다. 팝콘 자판기 게임장 전혀 없고 음식물 반입 100% 금지에 달랑 2개 관, 70여개밖에 안 되어 보이는 좌석등. 문화진흥을 위해 운영하는 극장이라더니 정말인가봐요..;; 생각보다 많은 이십여명이란 대관중이 모인 가운데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 시대 배경과 내용 전반


문득- 인천 유나이티드 = 인유가 처음 창단될 때 생각이 나는데요-

당시 센세이션이 상당했죠. 대도시에 신생 시민구단! 독일출신 로란트 감독에 월드컵 대표 선수들 - 최태욱, 알파이 외잘란등등.. 화려한 창단 멤버! 창단 기념 경기에서 감바 오사카를 4:0으로 대파하면서(휴가 나와서 저도 봤던 기억이 나네요) 축구팬들 사이에선 "04시즌 우승후보는 인유!"라는 분위기가 파다했었습니다. 당시 축구잡지 베스트일레븐에서 한 우승후보 예상 설문 조사에서도 인유가 톱에 올랐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하지만.
K리그의 벽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었지요...

시즌이 끝나고 보니 결과는 최하위(에서 2번째). 감독과 용병이 도망가고.. 팀은 연패에 붕괴..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큰 법, 구름처럼 모였던 팬들도 산산히 흩어지며.. 최고의 기대를 받던 다크호스팀이 최약체이라는 불명예의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단 1년 밖에 걸리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불안하기만한 05년 시즌의 시작...

영화는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약체. 하위팀. 재정이 열악한 시민구단. 연습구장도 없어 1시간 반 연습을 위해 3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팀... 다른 팀에서 적응 못 해 떠나온 선수들.. 싼 맛에 데려온 용병.. 스타 하나 없는 선수진에 그마저도 1군 주전 멤버는 15명뿐..
아프고.. 다치고.. 상처를 입어도.. 그들에게 더 이상의 선수교체는 없다!! 두둥!

 
 



05년 장외룡 감독의 첫 미팅씬.

장외룡 감독이 팀의 올해 목표를 플레이오프 진출이라고 말하며 전반기 목표 '7승 3무 2패'를 칠판에 적자, 어이없어 하는 선수들과 스텝들의 표정이 카메라에 비춰집니다. 04년 한 해 동안 6승밖에 못 했던 최하위팀의 전반기 목표가 7승이라니? 7승이라니? 허용이 커도 너무 큰 것 아닌지..?
하지만 장 감독은 忍耐(인내), 努力(노력), 犧牲(희생)을 강조하며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천 유나이티드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하는데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상대팀을 연구하는 장감독, 그리고 초인적인 정신력과 믿음를 가지고 시합에서 그것을 펼쳐 보이는 선수들... 1승, 또 1승..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인천을 한 경기 한 경기를 이겨 나갑니다.

꼴찌 구단으로서 전혀 주목 받지 못 하던 인유가.. 빈 관중석을 채우기 위해 '박주영이 온다'고 상대팀 광고까지 하면서 홈관중 유치까지 나섰던 그 인유가('오늘 홈관중들은 인천 선수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다'라는 나레이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장감독의 호언장담대로, 정말로 전반기에 7승을 달성하고 맙니다. 창단한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인천이 서울 포항 수원등 쟁쟁한 명문등을 모두 제치며 리그 선두권을 질주하게 된 것이죠.
후기에서도 호성적을 낸 인유는 05시즌 K리그 통합 순위 1위를 기록하며 당당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됩니다. 정말 시즌 전까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 했던 인천의 역전 드라마였죠. 그제서야 언론들도 인유를 주목하면서 장외룡 감독의 이름을 딴 '공포의 외룡구단'이란 별명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사연 많은 상대, 부산을 만난 인유.. 이미 선수들의 체력과 부상 정도가 한계점을 돌파한 상황이었던 인유였지만 장감독의 뛰어난 용병술에 휘말린 부산에 2:0 완승! 마침내 울산과 챔피언결정전을 가지게 됩니다!

 

...당시 1차전은 저도 부대에서 TV로 봤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데요... ...... 05년 11월 27일... 챔피언 결정전 1차전...
인유은 울산을 홈으로 불러들인 가운데... 그 많은 홈관중 앞에서 1:5의 대패를 당합니다.

홈이었는데... 챔피언 결정전이었는데...
당시 이천수가 헤트트릭을 했었죠... 사실상 우승이 결정되어 버린 1차전... 눈물을 삼키는 인유의 서포터들과 선수들...
하지만 라커룸으로 돌아온 장감독은 선수들에게, 0:5에서 1골을 넣어주어 정말 고맙다며 선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1주일 뒤에 벌어진 2차전... 석연치않은 핸들링으로 1점을 내주고 2:1로 승리.. 하지만 1차전 1:5 패배로 인한 골득실차로 인해 우승은 울산 현대에게로... 경기 종료 휘슬과 동시에 모두 그라운드에 쓰러져 버리는 인유의 선수들. 모두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립니다. 인유의 서포터들도 모두 눈물을 떨구면서.. 그라운드를 향해.. 인유의 선수들을 향해 모두 엄지손가락을 세워 올립니다..

그렇게, 꿈 같았던 인유의 '05 시즌은 끝이 납니다..


■ 영화 전반


영화는 장외룡 감독과 주장 임중용등에게 포커스를 두면서 인유가 어떻게 패배의식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었나, 어떻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었나 하는 부분을 간략하지만 인상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때론 담담하게.. 때론 흥미진진하게 말이죠.
정말 하나의 꾸밈이 없는 100% 실제 다큐인데... 근데 그게 그렇게 드라마틱할 수가 없어요. 기쁨과 환희, 절망과 슬픔이 모두 들어있는, 스포츠라는 장대한 드라마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죠. 웃으며 관람을 시작했던 모든 관객들이 끝날 때는 거의 다 우시더군요... 저도 울었어요;; 3번이나;; 큭... 난 인천의 경기도 결과도 작년부터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왜 그리 눈물이 흘렀을까...

오랫동안 촬영을 해온 다큐 영화답게 당시 상황을 장면장면마다 잘 잘라 넣어 놓은 게 더욱 집중도를 높여줬던 것 같아요. 선수들의 불화, 선수촌의 생활, 라커룸에서의 모습, 단장과 기타 구단 관계자들, 선수와 감독, 가족들간의 인간사까지... 말로만 듣고 상상만 해오던 많은 장면들을 보여 주었기에 축구팬으로서 2배, 3배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인상적인 몇 장면에 대한 코멘트하자면.

1. 초반에 라돈치치와 임중용이 싸우는 장면. 분명 전연령 무비인데 쌍욕이 난무하더군요-_-. 하긴 2차전 핸들링 상황에서도 그라운드에서 적나라하게 욕하는 장면이 나오더만;; 영화 팜플렛에 보면 인물 소개에 '라돈치치는 슬램덩크의 강백호 같은 인물'이라고 써놨더군요. 관람 전 팜플렛 봤을 땐 피식, 하고 말았었는데 영활 다 보고 나니 '어쩌면 진짜 맞을지도....-_-' 라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2. 김학철 선수의 딸이 우는 장면... 축구 선수라며 집에도 못 들어오는 아빠... 아빠가 보내준 인터넷 편지를 소리내서 읽으면서 펑펑 우는데- 저도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영화 보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다 들어서 알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ㅠ_ㅠ 흑

3. 서동원 선수 영입씬. 안종복 단장하고 에이전트하고 얘기를 하죠. 에이전트가 팀내 최고 대우를 원한다고 하니까 단장님은 "그게 우리 팀 최고 대우야!"하고 소리를 빽-_-; 당연히 구체적인 금액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쨌던 시민구단 인천의 재정난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어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4. 부산과의 플레이오프! 으와- 감독, 선수, 프런트, 구단직원 등등, 과거 부산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인천에 상당히 많았더군요;; (지금의 부산 자체가 뭐 악팀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_-) 그 구단 직원 분께서 인터뷰하는데 "....어쨌던.. 부산은 꼭 이겨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참으시던 장면에서.. 왠지 모를 숙연함이 느껴졌습니다..
더 놀라웠던 장외룡 감독이 부산전 작전 지시! 경기전 작전회의에서 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어찌됐던 공격은 이렇게 3:3이다" "사이드에서 킥이 올 상황에서는 누구누구가 이렇게.." 라고 설명하는 장면과, 실제 골 장면들을 동시에 오버랩해서 보여주는데- 와, 그 작전의 위치에서 그대로 2골이 다 들어가 버리더라고요! 뭐 어느 팀이나 그 정도 작전은 안 세우냐 말할 수도 있겠지마는.. 그래도 역시 외룡사마 용병술의 대단함을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5. 챔피언 결정전 진출하자 그제서야 인천 선수들을 인터뷰 오는 언론들;; 하지만 스포츠 1면은 온통 이천수 일색이고 인천은 언제나 구석에 조그맣게 실리죠. 통역도 없이 라돈치치 인터뷰 하겠다고 와서 열받은 라돈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또 모 신문에는 인천은 뭐 타팀에서 적응 못 한 쓰레기? 떨거지들이 모였다나 어쨌대나~ 여튼 안 좋은 뉘앙스로 기사를 써놓아 가지고 선수들이 분노합니다. 이 때 주장 임중용 선수가 한 말이 걸작이예요;;.
"우리가 쓰레기면, 뭐, 쓰레기한테 밀려서 챔피언 결정전 못 나간 놈들은 다 뭐야?.. 뭐, 그냥 다 나가 죽어야겠네?" -_-b

6. 마지막은 역시... 최종전 승리 후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과 서포터들.. 그리고 그들이 치켜 올린 엄지손가락..

     
■ 줄이며

감독 인터뷰를 나중에 찾아보니 이 영화를 찍게 된 계기가

<K리그를 찍겠다는 생각에 스포츠 신문 기자 친구들한테 조언을 구했더니 다들 '인천 유나이티드 찍어, 거기 골 때려'라는 거다>


..라고 밝혔더군요;

정말 그 말대로 '05년의 인천은 여러모로 골 때리는 구단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판에 불어닥친 신선한 푸른 바람이었지요. 솔직히 저도 심정적으로 인천을 많이 응원했습니다.... (이번 시즌은 좀 안 좋았긴 했어도...;)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이렇게, 축구라는 스포츠의 진정한 재미를 다시 한 번 절실히 일깨워 준 이 인천이란 팀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물론 영화를 만드신 모든 분들에게도요.

제대로 배급도 안 된 다큐 영화라 더 많은 분들이 이 <비상>을 못 보는 게 참 아쉽습니다... 나중에라도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관객 2만명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어제인가 읽었는데 관객 2만이면 다큐 영화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라, 어쩌면 장기 상영할 수도 있다네요. 국내 다큐영화 최다 관중 기록도 돌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고... 흠... 여튼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잊지 않고 느낀 점 또 하나... 늘 하는 얘기지만...
왜 k리그팬인 나는 이런 인천 같은, 내가 응원할 연고지팀 하나가 없는 걸까... 너무 안타깝다...

ㅠ_ㅠ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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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30일